Coal Miner, 1955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4:30

이 작품은 전후의 사진작가 임석제가 광부들을 찍은 연작 사진 중 하나이다. 광산 입구에는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세 사람이 서있고 전경에 보이는 인물은 중장비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석제는 두 이미지를 중첩시키거나 결합시킴으로써 하나의 전체적 이미지를 만드는 등, 사진이라는 매체를 두고 실험을 하였다. 이는 주인공의 두 팔 사이에 완벽한 구도로 자리한 입구의 세 인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Job Hunting, 1954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4:27

임응식의 작품은 주로 리얼리즘에 초점을 맞추고 보통 사람들이 겪는 사회적 이슈를 담아낸다. “구직”이라고 쓰인 푯말을 허리춤에 단 채 벽에 기대어 선 사진 속 인물은 6.25 전쟁 이후 극심한 실업난 속 괴로운 실상을 보여준다. 모자에 가려진 남자의 얼굴에서는 수치심 혹은 피로감이 옅보인다. 남자 뒤로는 주변의 상황은 의식하지 못한 채 악수를 하고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보인다.

Lady, 1930s (printed 1995)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4:26

한국에서는 1880년대에 기록 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 예술적 실험이 진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진은 예술의 한 형식으로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해창은 1929년, 한국 최초로 예술 사진으로 개인전을 가진 작가로 알려져있다. 그가 찍은 대부분의 인물 사진은 자연스럽게 보여야 한다는 지시를 따르며 야외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 반신상은 대상의 우아한 얼굴 모양새를 강조하기 위해 60에서 70도 사이의 각도에서 바라본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Twelve Thousand Peaks of Mount Geumgang (Diamond Mountains), 1910s (printed 2002)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4:25

일제강점기(1910-1945) 동안 일본 사진사들이 선전물을 위해 사진을 이용했던 것에 반해 민충식을 포함한 당대 많은 한국 사진작가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포착하기 위하여 카메라로 할 수 있는 실험을 시도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꾸며진 디자인 세트를 탁자 위에 올리고 알아보기 쉬운 봉우리들을 독립적으로 담아내는 방식을 취하여 명산으로 칭송받아온 금강산을 묘사하고자 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재현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Spring Landscape, 1944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4:21

변관식은 동양화에 중점을 두고 한국 전통 회화가 근대 수묵산수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한국화의 계승을 주창했던 중추적 예술가 단체인 동연사를 결성하였다. 이 작품은 초봄 산새에 점차적으로 스며드는 온기를 묘사하여 봄이 불러일으키는 재생의 흥취를 포착하였다. 작품에 사용된 다양한 색은 먹으로 그린 근대 회화의 특징이 된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여준다.

Atelier, 1942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4:18

이 작품에서 장우성은 일부 출처에서는 작가의 아내라고 지칭되기도 하는 모델과 함께 스튜디오에 있는 자기 자신을 등장시킨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가까이에 위치하는데, 작가는 서양식 의복을 하고 파이프 담배를 손에 쥐었고, 여성 인물은 전통 한복을 입고 있다. 작품 왼쪽 아래 구석에는 한국식 도자기에 서양식 붓들이 걸쳐져있는데 이는 수묵화 역시 근대적 변화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Autumn Landscape, 1940s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4:15

이 작품은 시골 풍경을 묘사하며 진경산수를 확장시킨 양상을 보인 이상범 화풍의 진화를 보여준다. 18세기, 진경(眞景)으로 그린 작가들은 역사적으로 그간 집중해왔던 중국의 풍경으로부터 벗어나 내 땅의 풍경이 갖는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이상범과 같은 작가들이 한국 시골 특유의 목가적 풍경이 갖는 고요한 아름다움을 찬찬히 담아내며 그 맥을 이어갔다.

Paradise, circa 1936

Submitted by akwong on Mon, 08/29/2022 - 17:58

백남순은 나혜석에 이어 한국에서 서양 스타일의 미술을 취한 두 번째 여성 작가로 알려져 있다. ‘낙원’에서 보이는 색채와 추상적 형태의 나무와 산들에서는 야수파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작가는 배경과 후경에 위치한 산들 사이에 거리가 존재하는 듯한 착시를 유도하기 위하여 문인화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색투시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발전한 직선 원근법을 모두 사용하였다. 작품 전체적으로는 한국의 수묵산수화와 같이 산과 물이 자리한 전통적 틀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Family, 1930–35

Submitted by akwong on Mon, 08/29/2022 - 17:53

배운성은 한국에서 북한으로 돌아가기 이전에 독일에서 이십 년, 파리에서 이 년을 거주한 바 있다. 그는 해외에 있는 기간 동안 한국의 인물들과 문화적 요소를 자주 그리곤 했다. 여기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다채로운 색의 한복을 입고 있다. 작가는 이 단체 초상의 왼쪽 뒤편 구석에 자신을 배치시키되 창문을 통해 보이는 다른 방에 위치한 이들과는 떨어뜨려 두었다. 이러한 특이한 배치는 그가 가족 내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있는지에 관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Valley in Gyeongju, 1934

Submitted by akwong on Mon, 08/29/2022 - 17:52

이인성의 작품들은 향토색을 대표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는 한국의 농삿일, 지역 풍습, 시골 풍경의 의미있는 장면을 그려내기 위함이었으나 연례 미술 경연의 일본인 심사위원들은 원시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한국인들을 적절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하여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작품들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동아시아 내 현존하는 최고(最古) 천문대인 첨성대와 같이 확실하게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적들을 작품에 포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인성이 진실로 어느쪽에 충성했는지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