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ar Savoy Hotel Myeongdong, Seoul, Korea; Gongdeok-dong, Seoul, Korea; Sogong-dong, Seoul, Korea; Sogong-dong, Seoul, Korea; Myeongdong, Seoul, Korea; Malli-dong, Seoul, Korea; 1956-63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5:32

“근대와의 만남”에 전시된 사진들과는 달리 여기 소개된 이미지들은 전후에 다시 일어서는 나라에서의 순간적이며 일상적인 현실을 담고 있다. “캔디드 포토(연출되지 않은 사진)”의 거장으로 불리는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의 영향을 받은 한영수는 엄청난 인내를 갖고 적절한 그 순간이 나타날 때 까지 한 자리에서 기다리곤 했다. 행인들이 여러 대의 라이카 카메라를 두고 서있던 작가를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대부분 연출되지 않은 이 사진들은 행복, 애정, 순수, 그리고 확신 등을 드러내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도 자신들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과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드러내어 무의식적 순간을 포착했다.

Pulse, 1950s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5:31

이응노가 아직 한국에 거주하던 시기에 그려진 ‘생맥’은 작가가 이후 파리에서 창작하게 되는 문자추상 작품들의 전조가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캔버스 왼쪽 아래 코너로부터 시작되는 등나무 덩굴을 그리고 있다. ‘생맥’은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한편, 작가가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그리게 될 추상의 유형을 암시한다. 이후, 잭슨 폴록의 첫 번째 파리 전시가 열렸던 폴 파케티 화랑에서 이응노 역시 파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갖는다.

Panmunjeom Hall of the Armistice Talks in 1953, 1954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5:26

러시아에 살던 변월룡은 1953년, 소련 문화부에 의해 북한으로 이동했고, 그는 15개월간 평양미술대학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가르쳤다. 이 작품은 아카데믹 리얼리즘과 인상주의가 혼재된 레닌그라드 예술아카데미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준다. 전쟁 이후 1951년부터 1953년에 걸쳐 남한과 북한은 판문점에서 휴전회담을 가지며 전쟁포로를 교환하였다. 비슷한 시기, 고국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변월룡은 역사적 사건의 증인이 되어 이 회담장을 그렸다.

Tied People, 1950s; Children, 1950s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5:23

언제나 곤궁했던 이중섭은 버려진 담뱃갑 안쪽의 은박지를 이용해 ‘묶인 사람들’과 ‘아이들’을 그렸다. 작가의 선에 대한 애착은 이중섭 작품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 걸린 두 점의 작은 작품에서는 은박지의 유연한 표면에 그라타주(긁어내기)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그것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마모로 인해 깊어진 틈은 은박지라는 재료가 가진 연약한 성질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세상이 아닌 듯한 이 장면에 정직한 느낌과 함께 작가가 처해있던 외적 환경의 암울한 느낌을 불어넣었다.

White Ox, 1950s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5:22

이중섭의 주요 제재 중 하나인 소는 소박하고 성실하며 화평하면서도 단호한 한국의 정신을 상징한다. 이중섭은 자신의 또 다른 자아로서 소를 자주 활용한다. 그러한 점에서 ‘흰 소’는 극심한 역경의 시기에 작가 자신 안의 내면의 투쟁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작품 속의 소는 결연한 투지와 탈진, 그 사이에 낀 채 앞쪽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다. 여기서 보이는 붓놀림은 신중하며 서양의 표현주의의 그것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한국 서예의 강렬한 검은 붓자국도 연상시킨다.

Refugee Train, 1951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5:20

6.25전쟁(1950-53) 중, 서울로부터 임시 수도 부산까지 기차가 사람들을 실어날랐다. 전쟁 기간 중 김환기는 부산에서 지내며 이 ‘피난열차’를 그렸다. 서울을 떠난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부산으로 향했고, 그림 속 열차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이들로 가득 차 있다. 언뜻 보기에는 잔잔해 보이는 이 그림은 서울에서 벌어지던 전쟁의 움직임을 피해 사람들이 취해야 했던 필사적 조치를 보여준다.

Ferry, 1951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4:59

매우 정제된 형태와 구도를 보이는 이 작품의 구상 양식을 보면 장욱진이 단순함을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좋아하는 모티프를 구획된 색과 비합리적 비율로 반추상화하여 회화의 공간을 탐구하고 있는 ‘나룻배’는 6.25전쟁(1950-53)의 역경 속에서도 이상향에 대한 서정적 표현을 모색한 장욱진의 노력을 보여준다.

Self-Portrait in a Long Blue Coat, circa 1948–49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4:48

6.25 전쟁(1950-53) 이후, 남한은 북한에서 살기를 택한 작가들의 작품을 금지했고, 이로 인해 많은 수의 작품들이 잊혀져야만 했다. 남한에 남겨진 가족들이 지켜왔던 이쾌대의 작품들은 1988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 그림에서 푸른 두루마기를 입고 페도라를 쓴 채 등장하는 이쾌대는 전통적 붓을 손에 쥔 채 서양식 유화 물감을 사용하는 작가의 모습으로 자신을 그렸다.

Jeong Cheong (Clear Sound), 1934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4:33

‘정청(靜聽)’은 집 안에서 여유롭게 전축을 듣고 있는 두 여성을 보여준다. 두 사람을 둘러싼 축음기, 농구공, 서양식의 가구 등의 수입품은 이 가정의 부를 상징하고 근대 소비문화에 대한 선호가 커져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어른의 한복 저고리에 새겨진 루이 비통 문양은 서양으로부터 유입되는 물건과 개념에 대한 달라진 태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는 근대화를 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Photograph of Choi Seunghui (1911–1969), 1930

Submitted by akwong on Tue, 08/30/2022 - 14:31

신낙균은 한국인 최초로 동경사진전문학교를 졸업한 선구자였다. 사진을 가르치는 강사였던 그는 최신의 기술과 방법을 가르쳤다. 이 사진은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엔터테이너였던 최승희(1911-1969)를 찍은 가장 오래된 사진 중 하나이다. 최승희는 일본 근대 무용의 개척자인 이시이 바쿠와 한국 불교 무용의 명인인 한성준 수하에서 수련하였다. 이 작품은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인화된 사진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