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해설
전사
권진규는 인체를 표현하는 독창적인 양식을 통해 당대 어떠한 다른 조각가들과도 차별되는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1959년 귀국했습니다. 이 때는 서구의 새로운 미술에 경도된 한국의 많은 조각가들이 추상 개념을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권진규는 서구 양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에 반기를 들고, ‘한국적 리얼리즘을 정립하고 싶다’라는 의지로, 자신의 구상조각을 제작해 나갔습니다.
그의 작품은 여인을 모델로 한 흉상 조각이 주를 이루는데, <비구니>도 그 중 하나입니다. 단순하게 처리된 상반신과 삭발한 머리는 관객이 오로지 얼굴에 관심을 집중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평온한 얼굴 표현은 깊은 명상의 세계로 관객을 인도합니다.
1960년대 대부분의 한국 조각가들이 철 조각에 관심을 갖는 동안, 권진규는 테라코타나 건칠 같은 일반적이지 않은 재료를 계속해서 사용했습니다. 이 작품에도 ‘건칠’이라는 독특한 옻칠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삼베에 옻액을 입혀 석고틀에 바르고 덧입히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견고한 형태를 완성하는 기법입니다. 의도적으로 거친 질감을 내기 위해 그는 옻액에 깨진 기와 가루와 같은 재료를 함께 섞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회색조의 거칠거칠한 표면이 작품의 인상을 지배하게 되고, 이는 대상이 지닌 모종의 정신성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어마어마한 공력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오래가는 ‘동양’의 재료라는 이유로, 그는 건칠 기법을 고수했습니다. 그러나 권진규의 작업은 살아생전 세간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권진규는 1973년,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서울 작업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조각가로 기억됩니다.
이 오디오가이드의 설명작품은 RM이 선정했으며, 원고는 Ellen Joo, Youngin Arial Kim, Virginia Moon, Julia H. Han, 박혜성, 김인혜가 썼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방탄소년단 RM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