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해설

전사

이 작품은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을 그린 초상화입니다. 19세기 말 제국 열강의 위협 속에서 고종은 새로운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조선이 어떤 외세로부터도 독립적인 국가가 되기를 열망했습니다. 결국 1897년, '황제'의 나라임을 스스로 선포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고쳤습니다. 그러나 1907년, 황제의 자리를 일제에 의해 강제로 박탈당했으며, 1910년에는 한일병합이 이루어지면서 나라 이름도 다시 '조선'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작품을 그린 화가 채용신은 원래 무관 출신이었지만 그림에 재주가 탁월해 1901년 고종이 49세일 때 공식 어진을 그리는 어용화가로 발탁되었습니다. 전통화법을 계승하면서도 사진을 보는 것처럼 사실에 충실한 묘사력을 발휘했던 그의 어진은 고종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고종이 직접 '석강'이라는 호를 하사하였으며 벼슬을 내리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1905년, 국가의 외교권이 일본에 의해 박탈당하는 을사늑약을 당하자, 채용신은 낙향하여 그림 그리는 일에만 전념합니다. 이 작품은 1920년, 고종이 일제의 오랜 감시를 받으며 죽은 지 1년이 지난 후 제작된 것으로, 고종의 죽음을 추모하는 누군가의 의뢰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화면 오른쪽에 태상황제였던 고종이 49세일 때 그린 어진을 다시 따라 그렸다고 적혀있어요. 즉, 공식 어진과 유사하되 크기를 작게 하여, 개인 보관용을 원하는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제작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